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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 큰 사람들(전체리스트)

예수님의 제자
2004-02-17 12:48:03   read : 8693

예수님의 12제자

* 다대오

- 다대오의 말이나 행동은 공관복음서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고 요한복음에 딱 한번 기록되어 있다(요14:22). 여기에 기록되어진 유다는 다대오 였다. 요한은 유다가 다락방에서 질문한 것을 기록하면서 배신자 유다와 조심스럽게 구별하기 위해 가룟사람 아닌 다른 유다가 질문을 했다고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 다대오라는 유다는 다른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세속적인 왕국이 빨리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유다가 상상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셨다. 이때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유다가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하고 질문을 하였다.

-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을 하셨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 유다는 예수님께서 사랑을 주장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배욕에 사로잡힌 유다는 남을 섬기려는 예수님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유다는 자신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을 깨닫게 되었다.

- 예수님은 순종과 사랑을 가진 자에게만 나타내 보이신다는 것이다. 사람이 예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면 그 마음속에 예수께서 임재하신다. 유다는 사랑을 통한 믿음의 방법으로 그 생활이 변화되었다.

<더 깊은 연구>

다대오
(Qaddai'o' , Thaddaeus)「칭찬함」

예수의 12사도 중의 한 사람으로, 가룟인 아닌 유다와 구별되는 다른 유다이다(마 10:3, 막 3:18, 요 14:22). 야고보의 아들 혹은 형제(눅 6:16, 행 1:13)라고도 되어 있다. 또, 마태복음 10:3의 본문에 `다대오라고 하는 레위'라고 되어 있는 사본이 있다고 한다. 이 두 별명은 같은 의미이다.히브리어나 아람어로 `레브'(Ieb)는 `마음'의 뜻이고, 아람어의 `다드'(Thad)는 `어머니의 가슴'의 뜻으로써, 다대오도 레위도 `사랑스러운 아이'의 뜻이다. 희랍어의 `다대오전(傳)'에는 레위와 동일인으로서 수리아 인, 알메니아 인에게 전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또 어떤 전설에는 아라비아와 메소포타미아에서 전도하고 바사에서 순교하였다고 한다.



예수님의 12제자 가롯 유다

가롯유다는 가롯 시몬의 아들이며 (요6:7) 주께서 택한 열두 사도 중에 한 사람이다. 가롯 유다는 복음서에 나오는 인물들 중에 가장 불가사의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의 뜻과 배경, 성품 그리고 예수님을 배반한 동기와 죽은 방법등 모든 것들이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가롯이라는 이름에는 다양한 설명들이 제시되어 왔다. 즉 '그리욧 사람' '암살자' '가짜, 거짓말장이, 위선자' 등의 여러가지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설명되었다.

이 가운데 일반적인 설명은 두 가지이다. 첫째, '그롯사람'이란 견해로12사도 중에 11사도가 갈릴리지방 사람인데 반해 유일하게 가롯유다만이 유다 지방의 사람이라는 것을 근거로 삼고 있다. 둘째는 가장 가능성있는 견해로는 가롯이라는 말이 '가짜, 거짓말장이,위선자'를 뜻하는 '세케르'라는 아 람어의 어근에서 나온 것으로 이 말이 당시 아람어를 사용하던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배반자를 부를 때 사용한 별명이었다는 견해이다.

막3:14,요6:70을 미루어 보면 예수님은 복음을 전도할 사도를 신중히 선택하심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요6:64를 보면 유다를 택한 것은 매우 곤혹스 러움을 느끼게 한다. 이것은 예수가 속죄적 죽음을 하기 위해 하나님의 계획에 의식적으로 복종한 것이라고 하여 이를 설명하려고 하는 바도 있지만 공관복음은다른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예수께서 유다를 제자로 선택하신 것은 그를 유망하게 보고 또 그의 성격을 통찰하고 크게 쓰여질 가능성을 갖고 있음을 발견하여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를 받아들이고 그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또 이 무리안에 배신자가 있으면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여하튼 그의 성격을 생각하여 볼 때 아마 그리스도의 왕국이 건설될때 지상에 있어서 어떤 이들일 얻게 되리라고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가롯 유다는 예수의 제자단의 회계일을 보면서 일행의 전대를 맡았다. 그래서 그는 자기 호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부정을 행했다. 베다니의 마리아 집에서 그녀가 예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표시로서 지극히비싸고 순수한 나도향유를 예수의 발에 부었을 때 제자들 특히 유다는[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서 주지아니하였으냐]라고 투덜거렸다. 그러나 그의 본심은 그 돈으로 자신의주머니를 채우러는 생각이었다.

이에 예수께서 부드럽게 충고한즉 그는 오히려 분격하여 제사장들에게 가서 예수를 팔아 넘길 것을 제의했다. 제사장들은 이에 동의하여은 30개를 지불했다. 그것은 당시 노예한 사람의 시세인데 약 9달러 50센트에 달한다고 한다. 이때부터 유다는 예수를 넘겨주려고 기회를 엿보고있었다. 유월절 만찬 석상에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릴 때가 다가오는 것을 알고 유다에게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말씀했다. 마귀가 그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던 것이다.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라고 예수게서 조용히 말씀했을 때 제자들은 모두 근심하면서 저마다 [내니이까?] 라고 반문하였다. 베드로는 예수의 품에 기대어 누워있는 요한에게 머릿짓를 하며[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고 졸랐다. 그러자 예수께서는[나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요13:26)라고 말씀했다. 그것은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라고 한 성경말씀의 성취였다 (요13:18,시41:9) 그리고 예수께서는 한 조각을 찍어서 유다에게 주었다. 유다가 그것을 받자마자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갔다.

뻔뻔스럽게도 유다는 시치미를 뚝 떼고 [랍비여 내니이까]라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네가 말하였도다]라고 말씀하셨다(마26:21-25) 네 하는일을 속히 하라(요13:27). 제자들까지도 예수께서 왜 유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는지 아무도 몰랐다.(요13:28) 어떤 자는 유다가 돈 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쓸 문건을 사라고 하시는 것으로 혹 무엇을 나누어주라고 하시는 줄로 생각하였다. 이에 유다는 곧 나가서 제사장들에게달려갔다. (요13:28-30)

최후의 만찬이 끝나자 예수께서는 11제자와 같이 겟세마네 동산으로갔다(마26:36). 기도가 끝났을 때 유다의 선도검과 몽둥이를 들고왔다. 야암이 기 때문에 누가 예수인지 알리는 신호로서 유다는 예수에게 입맞추었다. 이리하여 예수께서는 체포되었다.(마28:47-50)유다가 예수를 배신한 동기가 무엇인지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그러나 초대교회가 사도들 중의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토록 악명높고 수치스러운 일화를 인위적으로 지어냈을 리는 없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이름은 더욱더 더럽혀져 제4복음서는 그를 사탄이나, 적그리스도와 동일시하고 있는 정도이다. 그러나 이런 유다에 대한 적개심이 유다가 예수를 배반한 사건 자체의 사실성을 왜곡시켰다고는 보기 어렵다.

앞에서도 약간 언급되었지만 유다는 아마 단순히 욕심이 많고 부정직하여 사사로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여 예수를 배반했을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흉악한 반역으로 얻게 되는 돈이란 하찮은 소액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예수를 배반한 동기를 전적으로 이런식으로 생각 하기에는 조금 무리인 것으로도 여겨진다. 오히려 유다자신이 예수님에 대하여 많은 기대를 한 것에 대한 실망과 거짓예언자들과 거짓메시야를 공격하는 유대교의 율법 및 제도에 대한집착으로 그러한 행동을 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이튿날 아침 어느 정도 냉정해진 유다는 예수께서 정죄되어 사형을 선고 받았다는 것, 자기가 죄없는 사람의 피를 판 것을 알고 후회하면서 제사장 과 장로들에게 가서 은 30개를 돌려 주면서 [내가 무죄한 피를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라고 말했다. 그의 양심은 제자들의 양심처럼마비되어 있지 않았다. 제사장들은 그에게 말했다. [그것이 우리에게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리라] 그래서 유다는 은을 성소에 던져놓고나가서 목매어 죽었다. 제사장들은 [피값]을 성전 재정에 넣는 것을싫어하여 그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산다.

이 밭은 [피밭]으로 알려지게되었다 (마27:3-5). 사도행전에서는 이 부분을 상당히 다르게언급하고 있다. (행 1:18,19) 즉 사도행전에 따르면 유다 자신이 그 밭을샀으며, 그의 몸이 곤두박질하여 (혹 부풀어 올라?) 배가 터져 창자가다 흘러나왔다고 한다. 유다의 비참한 죽음은 초기 기독교 설교자들과 저자들에 의하여 수없이 인용되곤 하였다. 그리고 또 유다의 죽음이 보다 무섭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소름이 끼치는 종류의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유다의 죽음에 관한 신약의 두 기사는 유다가 배신행위의 결과로 횡사를 당했다는 것과 예루살렘에 있는 작은 땅을 샀으나 배신행위의 결과로 인하여 [피밭]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것은 서로 일치한다. 구약 시편 109편을 보면 유다의 죽음에 대한 것이 예시되어 있다. 이것은 원리 작자와 동시대에 된 일에 대하여 노래한 것이었으나 사실은 가롯 유다에게서 이루어진 예언 이었던 것이다.(시109:8,행1:20)그리고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만이 멸망했다(요17:12). 이 두 장을 살펴보면 그는 하나님에게 강요되어 멸망의자식이 된 것이 하나님의 긍휼을 거부해서였으며 그리고 그것을 구하지도 않아서 멸망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12제자 도마

* 의심했으나 확신한 도마 (요20:27-29)

(1) 용감한 도마

- 베다니의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예수님은 이틀을 더 계시다가 베다니로 가고자 하셨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마을이었는데 유대 권력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벼르고 있어서 거기에 간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위험한 일이었다.

- 제자들은 이에 깜짝 놀라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요11:8)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뜻을 굽히지 않으셨다.

- 다른 제자들이 머뭇거리고 있을 때 도마는 죽는다 해도 주를 따라 베다니로 갈 각오를 했다.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요11:16). 우물쭈물하는 제자들에게 용기를 일으켜 준 사람은 도마였다.

(2) 위대한 대답을 들은 도마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작별의 말씀을 하고 계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말씀하시면서 '내가 어디로 가든지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요14:4)고 하셨다. 참을성 없는 도마는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습니까?' 라고 반문을 하였다.

- 도마는 정직한 자이므로 주님의 말씀을 확실히 이해하기 위하여 바른 질문을 했다. 의문은 의심과는 다르다. 확고한 신앙을 소유하기 위하여 의문을 품는 것은 당연하였다.

- 도마의 질문에 예수님은 분명히 대답하셨다(요14:6). 도마의 바른 질문은 바른 신앙을 얻게 만들었다.

(3) 의심에서 확신으로

-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던 날 밤에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다.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셔서 제자들이 있는 곳에 나타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 제자들이 예수께서 나타나셨다는 사실을 설명하면서 못자국의 상처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나 도마는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다'(요20:25).고 말했다. 도마는 극단적인 의심에 빠져서 직접 보고 확인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실증적인 방법만을 택하려 했다.

- 예수님은 이러한 도마에게 오셔서 살아계신 주님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 도마의 오랜 의심은 주의 살아계신 임재로 인하여 확신으로 변했다. 그 후 도마는 인도에서 전도하다가 순교했다고 한다.

- 우리도 살아계신 주님을 체험하는 체험적 신앙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 더 깊은 연구 >

도마
(qwma'', Thomas)「쌍동이」

예수의 12제자 중의 한 사람이다. 공관복음에서 이것은 그에게 주어진 유일한 이름이기는 하나(마 10:3, 막 3:18, 눅 6:15, 행 1:13)요한복음에서는 그 이름에 디두모(쌍동이, 히브리어 !milT도밈, 창 25:24와 비교)라는 설명이 가해져 있다(요 11:16, 20:24, 21:2). 예수께서 베다니에 사는 마리아의 형제 나사로의 병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돌로 때려 죽일 위험을 무릅쓰고 유대로 가려고 할 때(요 11:7, 8), 도마는 예수에게 모든 것을 바치고 좇으려고 친구 제자들에게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라고 말했다(요 11:16). 예수께서 제자들과의 이별을 앞두고 그들을 위해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는 것, 예수께서 어디로 가는가, 그 길을 제자들은알리라는 것을 말했을 때, 도마는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라고 물었다. 여기에 대해 예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대답하신 것은너무나 유명하다(요 14:1- 6).부활하신 주께서 처음으로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다는 말을 듣고 도마는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라고 말했다(요 20:24, 25). 하나님께서는 도마의 이 의심을 다른 사람의 유익이 되도록 쓰셨다. 즉, '우리가 의심하지 않도록 도마는 의심했다'(어거스틴). 8일 후 나타나신 주께서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도마에게 그가 구하는 표적을 보이자, 그는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말하고 주를 믿었다. 이렇게 도마는 요한복음을 통하여 다른 공관복음에서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도마가 회의가(懷疑家)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어떤 역본(譯本)에서 볼 수 있는 Divdumo' (디두모) 대신에 di?yuco'(디뿌스코스)`두 마음 있는'라고 읽는 설명으로 될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도마는 후에 페루시아, 또는 인도에서 전도하다가 그 곳에서 죽었다고 한다.


예수님의 12제자 바돌로매








* 나다나엘이라는 바돌로매 (요1:47-48)




(1) 바돌로매라는 인물




- 바돌로매는 '돌로매의 아들'이란 뜻이요, 나다나엘은 '하나님의 선물'을 뜻한다.

- 바돌로매는 나다나엘과 동일 인물이다. 신약성경 네 곳의 열 두 제자 명부에 바돌로매의 이름은 있으나 나다나엘은 없다. 그러나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디베랴 바다에 고기 잡으러 가는 일곱 제자 중에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이 있다(요21:2).

-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빌립이 곧 바로 나다나엘을 예수님께 데리고 간 것은 두 사람은 가까운 친구이기 때문이다(요1:45). 열 두 제자 명부에 바돌로매는 빌립과 항상 짝을 짓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가까운 관계임을 알 수 있다. 이것으로 보아도 바돌로매와 나다나엘은 동일 인물이다.




(2) 빌립의 인도를 받은 나다나엘




- 빌립이 예수님을 만난 즉시 나다나엘에게 찾아가서 '기다리던 메시야를 만났는데 그분은 나사렛에서 온 요셉의 아들 예수'라고 알려 주었다.

-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좋은 사람이 나올 수 있겠느냐?'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갈릴리에서 선지자가 나지 못하리라는 것은 당시의 전통이었다. 나사렛의 평판은 다른 고을보다 좋지 못했던 것 같다. (눅4:28, 마13:58, 막6:6).

- 빌립은 의심하는 나다나엘과 토론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간단히 '와 보라'고 했다. 여기에 대한 나다나엘의 반응은 회의를 품으면서도 무척 정직했다. 예수님도 그를 향하여 '보라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고 하셨다. 이 말씀에 나다나엘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고 있다.




(3) 나다나엘의 성격




- 나다나엘은 성경 탐구자이다. 진리 연구가였다. 그는 메시야의 약속을 찾으려고 성경을 공부했다. 빌립과 함께 메시야를 바르게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은 성경 말씀을 상고한 결과였다.

- 나다나엘은 기도의 사람이었다. 예수께서 그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고 한 것은 유대 사람들이 평소 기도와 말씀을 묵상하는 장소로 무화과나무 아래를 즐겨 찾았기 때문이다.

- 나다나엘은 진실한 사람이었다. 그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요, 거짓이 없는 사람이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의심도 하였으나 만난 후부터 편견과 선입견이 사라지고 신앙의 사람이 되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만을 고집하는 사람이 있으나 나다나엘은 이미 알고 있는 것과 모순이 되어도 진리를 인정하려는 진실성을 갖고 있었다.

- 나다나엘은 신앙의 사람이었다. 예수님을 만난 그는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신앙을 고백했다. 그의 신앙고백은 의심이 사라지고 오는 기쁨이며, 메시야 대망이 성취된 환희의 표현이었다.



<더 깊은 연구>

바돌로매

( barqolomai'o', Bartholomew) 「돌로매의 아들」

12사도 중의 한사람이다(마 10:3, 막 3:18, 눅 6:14, 행 1:13). 대개 빌립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에 대해 신빙할 만한 전설이 거의 없다. 아마 빌립이 예수에게 인도한 나다나엘과 동일인일 것이다(요 1:45, 46). →나다나엘.



나다나엘

(Naqanahvl , Nathanael) 「하나님이 주시다」

갈릴리 가나 사람이다. 빌립에게 전도를 받아 그리스도의 12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 되었다(요 1:45, 21:2).주님은 그를 보고 '간사한 것이 없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다나엘은 주님이 자기 마음을 미리 아시고, 또 빌립과 만나기 전에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고 이야기한 다음,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과 이스라엘의 왕으로 믿었다(요 1:47- 50). 그는 예수께서 부활 후에 자기를 나타내 보인 사람 중의 하나이며, 아마 바돌로매와 동일 인물일 것이다. `나다나엘'이란 이름으로 공관복음의 사도 명단에는 올라있지 않으나, 요한의 전설 중 초기의 제자들에게 나타난다. 요한복음 1:44- 46에서 그는 벳새다의 빌립과 관련되어 있으며, 다소 견해를 다르게 하는 요한복음 21:2의 전설에서는 `갈릴리 가나' 사람으로 되어 있다. 요한복음 1:47 이하에서 '아무런 간사한것이 없는 사람'으로 기록되고, 또 예수를 메시야로 믿은 것 이외에 신약성경에서 그에 관한 기사는 볼 수 없다. 그가 바돌로매와 동일시 되고 있는 유일한 이유는, 바돌로매가 사도의 명단에서 빌립과 관련되어 있다는데 불과하며, 그것조차도 사도행전 1:13에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빌립과 바돌로매 사이에 도마가 끼어 있기 때문이다. 또, 그는 `예수를 사랑한 제자'와도 동일시 되어 왔다. 또 어떤 전설에 의하면, 그는 인도와 아라비아 지방에서 전도하다가 껍질을 벗기어 순교하였다고 한다.


예수님의 12제자 마태







< 마태 >


* 레위라고 부르던 마태 (눅5:27-28)




(1) 세리였던 마태




- 마태의 본 이름은 레위요, 그의 직업은 세리였다. 로마 관리들은 세금 징수를 청부업자들에게 맡겨 세금을 거두었다.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세리는 로마 정부의 앞잡이로 단지 세금을 받을 뿐으로 지위는 매우 낮았으며 천대를 받았다.

- 예수님은 이러한 세리들의 식사에 참여함으로 세리들의 행위를 묵인하거나 용서한다는 뜻으로서가 아니라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를 교제함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 일반 유대인 사회에서는 천대를 받던 직업이었기 때문에 예수님도 그들과 교제함으로 유대인 지도자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예수께서 보이신 사랑의 행동은 세리들 사이에 감동을 주어 마태같은 인물이 나왔다.

- 세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해도 예수님 안에서는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인정된 것이다.




(2) 부름받은 마태




- 사회에서 소외되어 있고 친구가 없는 마태의 마음에는 예수에 대한 호기심과 존경심이 남달랐으리라고 여겨진다. 그러면서도 천대받는 세리를 예수께서 받아드려 주실까하는 의구심도 있었을 것이다.

-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마태는 예수께서 자기 앞에 서신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는 자비로운 음성을 듣게 되었다. 예수님의 부름에 압도당한 마태는 예수님을 영접하기에는 너무나 당황하고 있었으면서도 그의 마음은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했다.

- 마태는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즉시 순종하여 세관 장부를 덮어 놓고 세관을 나왔다.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세상 것을 과감하게 끊어 버리는 결단을 하므로 제자되기에 충분했다.




(3) 큰 잔치를 베푼 마태




-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마태는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베풀고 세리들과 다른 손님들을 초청하였다.

- 축하의 뜻이 있었다.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을 기뻐하는 축하잔치였다.

- 삶의 선을 긋는 데 뜻이 있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생활과 그후의 생활의 선을 긋는 잔치였다. 옛 생명은 죽고 새로운 생명으로 중생함을 고백하는 잔치였다.

- 예수님을 증거하려는 뜻이 있었다. 세리와 죄인들이 잔치 자리를 가득 메웠다. 마태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증거하였다. 자기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사람들을 예수께 인도했던 것이다.

- 마태의 본 이름은 레위였다. 마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이다. 유대인의 관습에 의하면 일생에 중대한 변혁이나 전환을 경험할 때 이름을 개명한다(베드로, 바울, 이스라엘). 우리도 영적인 의미로서 새로운 이름을 가질 수 있어야겠다.

< 더 깊은 연구 >

마태

(Matqai'o' , Matthew) 「하나님의 선물」

마태에 관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곳은 그가 주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장면(마 9:9- , 막 2:14- , 눅 5:27)과 12제자의 명단(마 10:3, 막 3:18, 눅 6:15, 행 1:13) 뿐이다. 그의 소명에 대해 세 복음서의 기사를 비교하면, 마태복음에는 마태,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레위'로 되어 있다.또, `알패오의 아들'이라고도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두 가지 경우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 그는 원래부터 두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유대인 사이에서는 흔히 볼수 있는 일이다. 둘째, 시몬이 베드로라고 불리운 것처럼, 그는 예수를 좇으면서 `마태'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는 12제자의 명단에서, 또 제 1복음서의 기자로서 늘 `마태'라고 불리우고 있다.주님의 부름을 받은 당시, 그는 가버나움에 가까운 한 세관의 세리였다(눅 5:27). 이곳은 헤롯 안디바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다메섹에서 지중해 연안으로 뻗은 도로에 있는 한 세관이었을 것이다. 그는 아마 이 곳을 통과하는 화물의 징세(徵稅)에 종사했으며, 로마 제국의 징세 청구인이 아니고, 한 지방관리 또는 그 대리자였을 것이다. 따라서 대부호라고까지는 생각되지 않지만, 상당히 부유했던 것만은 그가 헌신하기로 결심했을 때 자기 집에 많은 사람을 초대하여 큰 잔치를 베푼 것으로 짐작할 수있다(눅 5:29). 그는 '나를 좇으라' 하시는 주님의 부르심에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았다(마 9:10, 막 2:14, 눅 5:27, 28). 이것은 상당한 결심이 필요했음에 틀림없다. 갑자기 심적 변화가 일어났는지, 전에 복음을 듣고 감화를 받았었는지 전혀 알수 없다. 이 소명의 시기(연월)은 분명치 않으나, 마태복음은 산상보훈 이후라고 하며, 바리새인 학자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전도 시작 후 얼마 안되어서 일 것이다. 사도의 명단에 마태 이름은 항상 두번째 4인조에 있다. 또 하나는 일곱번째에, 그리고 마태복음에만 여덟번째(단, 사도행전에도 여덟번째)인데, 이 두 복음서에만 `세리'라는 달갑지 않은 직함을 부기하고 있다. 당시 세리는 정치적˙종교적˙사회적 견지에서 국민의 배척과 멸시 천대를 받았다(마 21:31, 막 2:16). 이와 같은사실과 마태복음, 그리고 마태와의 관계를 생각해 볼 때, 그의 겸손이 엿보여 흐뭇하다.원래부터 그는 과묵한 사람이다. 부름을 받았을 때에도, 그 후에도 그의 발언을 볼 수없다. 그가 예수를 청하여 베푼 잔치에는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참석하고 있었다.이 석상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비방에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부르러 왔노라'(마 9:10- 13, 막 2:15- 17, 눅 5:29- 32)라고 대답했다. 예수님의 부활 후 마태는 약속의 성령을 대망하는 사도들 틈에 끼어 있었다(행 1:13). 그 후 그의소식은 신약에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가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도했다는 전설은, 그의 복음서의 성격상 수긍이 갈 만하다. 그러나 그의 만년에 대한 전설도 서방측은 순교했다 하고, 동방은 평화롭게 영면했다고 한다.



예수님의 12제자 사도빌립


* 최초에 부름받은 빌립 (요1:43-44)




(1) 나다나엘을 전도한 빌립




- 빌립은 베드로와 안드레와 한 동네에 살던 벳새다 사람으로 어부였다.

- 다른 제자들처럼 메시야를 갈망하던 사람.

- 예수님을 만난 빌립은 즉시 '나를 따르라'는 부름을 받았다.

- 메시야를 만난 빌립은 친구 나다나엘이 생각나서 친구에게 복음을 전해 주었다(요1:45-46).

예수께서 율법과 예언을 성취하실 메시야임을 확신하고 친구에게 말을 하였으나 나다나엘은 부인하였다. 빌립은 언쟁하는 대신에 '와 보라'고 대답해 주었다. 나다나엘의 의심에 대해 와 보라고 한 것은 주님을 만나면 논쟁이 더 이상 필요없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예수님께 직접 가 보자고 한 것이다.

- 전도에는 변론보다 사실이 입증되어야 한다.




(2) 오천명을 먹일 때의 빌립




- 예수님께서 큰 무리의 급식문제를 빌립에게 물으셨을 때 빌립은 주저하지 않고 계산을 제시하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은 있으나 불가능을 먼저 생가하였다.

- 빌립은 믿음이 없이 계산부터 했다. 빌립은 수천명을 먹이실 주의 능력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떡을 살 수 있는 금액만 관심이 있었다. 불가능하다는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께서 가능케 하신다는 생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3) 아버지를 보여 달라는 빌립




-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고별 설교를 하시는 중에 빌립은 '아버지를 보여 주옵소서'라고 간청하였다(요14:8).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보는 길만이 참 하나님을 보는 길이다. 그것은 어떤 신비적인 환상이나 심리적인 이상을 본 것들과 비할 바 없는 신앙의 기본이다.

- 빌립처럼 아버지를 보여 달라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있다.

- 빌립은 믿음을 갖기가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부진하기는 하지만 부지런히 신앙의 삶을 통해 예수님께 대한 의문도 없어지기 시작하였다. 빌립은 자신이 찾고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예수 안에서 발견했다.

- 그는 애굽에서 전도하다 순교했다고 한다. 예수를 위해 죽기까지 충성한 사람이었다.

- 주님의 살아계심을 육신의 눈으로 보고, 인간적인 사고를 통하여 하나을 찾으려는 사람은 믿음을 갖기가 어렵다. 그럴수록 더욱 주님을 사모하는 신앙을 소유하기 위해 경건의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의 12제자 사도요한



* 사랑의 사도가 된 요한 (요19:26-27)




(1) 세 제자 중의 하나인 요한




- 요한은 어부로 아버지는 세베대, 어머니는 살로메, 형은 야고보이다.

- 아버지는 자기 소유의 배를 가지고 있었고, 삯군들도 고용하고 있었으며(막1:19-20), 어머니는 재산으로 예수께 봉사함으로(막15:40-41, 16:1) 그의 부모는 부자로 알려져 있다.

- 요한의 형제와 베드로의 형제는 특별히 친밀한 관계였다.

함께 어부였고, 다 같이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심을 받았고 베드로와 함께 요한은 유월절을 예비하고(눅22:7-8), 텅 비어 있는 예수의 무덤으로 함께 갔다(요20:2-4).





(2) 요한은 어떤 성격의 사람인가?




- 야심가였다. 형 야고보와 함께 주님께 정치적으로 중요한 지위를 요구하여 다른 제자들이 분개하였다. 이렇게 좋은 자리를 바라는 이유가 있었다면 다른 제자들보다 부유한 집 출신으로 사회적 지위가 높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다른 하나는 그들의 어머니 살로메가 예수님의 이모로 친척관계 때문이었던 것 같다.

- 과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를 않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 그들을 태워버리기를 바랐다.

- 도량이 좁았다. 요한이 우연히 어떤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게 되었을 때 그는 예수님과 그의 일행을 따르지 않는 사람임을 알고 그런 일을 못하게 말렸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위하는 사람이다'고 하셨다.





(3) 변화받은 요한




- 요한은 화를 잘 내고 야망에 차 있었고 도량이 좁은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었으나 그가 쓴 서신을 통해서 살펴보면 사랑의 사도로 설명되었다.

- 요한은 타고난 성품을 쉽게 버리지는 못했으나 그리스도의 권능과 거룩한 생활은 요한의 나쁜 성품을 온유하고 사랑 많은 사도로 변화시켰다. 요한은 그의 말년에 설교하게 될 때는 언제나 '서로 사랑하시요'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 그의 변화된 모습을 보면, 예수께서 잡히실 때 도망갔다가 제일 먼저 달려온 제자였고, 십자가상에서 하신 말씀을 직접 들은 유일한 제자였으며, 예수님은 이 사랑하는 제자에게 자기 어머니 마리아를 맡기셨다.








< 더 깊은 연구 >




요한

('Iwavnnh', John) 「여호와의 사랑하는 자」

사도 요한이다. 세베대의 아들이며 사도 야고보의 형제이다. 요한복음, 요한 1, 2, 3서, 요한계시록의 저자이다. 사도 요한에 대해서는 성경 기록에 의한 것과 전설에 의한 것을 구별하여 살펴 본다.

(1)복음서 이전:요한은 갈릴리 출신이다. 갈릴리 사람들은 정열적이고 용기가 있으며호전적인데,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영향이 큰 유대 지방 사람들에 비하면 일반적으로소박하고 편견도 적고 늠름하다고 한다. 12제자 중 가룟 유다를 제외한 전원을 갈릴리사람 중에서 택한 것은 흥미롭다. 요한은 갈릴리의 한 어촌에서 자랐다. 벳새다라고도하고 가버나움이라고도 한다. 그의 가족은 성경에 나오는 사람만도 네 사람 있다. 먼저 어부인 아버지 세베대(막 1:19, 20)와 어머니 살로메(마 27:56, 막 15:40)이다. 살로메는 예수의 모친 마리아의 자매라고도 하나 확실하지 않다. 그녀도 열심히 예수를따랐으나 그 아들들을 영광의 자리에 앉힐 것을 구하여 어머니다운 이기심을 보인 적도 있다(마 20:20, 21). 야고보는 그의 형일 것이다. 요한과 더불어 사도로 택함 받았으나, 헤롯 아그립바에 의해 죽임을 당하여 사도 중 최초의 순교자로 되었다(행 12:1, 2). 그리고 요한 자신이다.




(2)복음 시대:요한은 처음 세례 요한의 제자였으나, 예수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은 다음 예수의 제자로 되었다(요 1:30- ). 즉, 갈릴리해변에서 아버지와 형제 야고보와 같이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을 때 예수를 만난 것이다(마 4:21, 막 1:19). 그 때 예수께서 야고보와 요한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라고 부르시니 그들 형제는 즉시 배와 부친을 버려둔 채 예수님을 따랐다. 바울과 같이 극적인 회심을 체험한 일도 없지만, 예수님과 행동을 같이 하거나 또 집으로 돌아가기도했지만, 곧 문자 그대로 일체를 버리고 예수를 따르게 되었다(눅 5:1- 11). 예수께서갈릴리 전도를 시작하자 요한은 주님과 같이 동행했으며, 직접 훈도(薰陶)를 받았다(막 1:21, 22). 또 12제자 중 한 사람으로 선택되어(마 10:2, 막 3:17, 눅 6:14) 그 중에서도 가장 예수의 사랑을 받았으며, 베드로와 야고보와 더불어 항상 예수님 곁에 있었다. 야이로의 딸 사건(눅 8:49- 56), 산상의 변화(마 17:1- 8),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막 14:32- 42) 등, 그는 특별한 때에 주님 옆에 있는 것이 허락되었다. 또 최후의만찬 준비 명령을 받은 것도, 그 자리에서 예수님의 가슴에 기대었던 것도, 십자가상에서 최후의 순간 주님께로부터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받은 것도 이 요한이었다(눅 22:8, 요 13:23, 19:26, 27).요한에게서 모순되는 두 가지 성격을 볼 수 있다. 첫째는 내성적이다. 요한복음에서도그는 거의 말하지 않았으며, 부활하신 날 아침 정경에서도 그의 소심할 정도의 신중성이 엿보인다(요 20:1- 10). 사도행전에서도 그는 항상 베드로의 보좌역을 하고 있다.둘째는 동시에 또 정열적이고 과격한 성격의 일면도 보인다. 예수를 받아 들이지 않는사마리아인의 촌에 하늘로부터 불을 내리게 하자고 제안하고(눅 9:54), 예수를 따르지않는 사람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 쫓아 내는 것을 금지시켰다(눅 9:49).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에게 `보아너게(우뢰)'란 이름을 붙였다(막 3:17). 그는 십자가까지 예수님을 따라가 그 최후를 지켜본 유일한 남자 제자이다. 그는 부활의 날 아침 베드르와같이 무덤에 갔고, 그 후 몇 차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의말씀을 오해하여 그는 죽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졌다(요 21:23).




(3)사도행전 시대:사도행전에는 과히 등장하지 않는다. 성전에서의 기적(행 3장), 사마리아인에게 성령 강림(행 8:14- 25) 때 등장하나 모두 베드로의 보좌역으로서이다.아마 그는 예수님의 유언을 충실히 따라 마리아의 시중에 골몰하고 있었을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의 미문(美問)에서 앉은뱅이 거지를 고쳐 주었을 때, 또 예루살렘의 대중에게 기탄 없이 십자가에 달리신 나사렛의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의 증거를 했을때, 그 표면에 서는 이는 베드로였으며, 그를 붙들어 세운 이는 요한이었다. 유대인들이 그들을 위협하여 앞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말며 가르치지말라고 경계하자,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라고 대담하게 대답하였다(행 4:19, 20). 바울이 회심후 14년만에 예루살렘에 올라왔을 때(AD50년 경)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이었던 야고보, 게바, 요한의 세 사람은 바울과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했다고 갈라디아서 2:9은 쓰고 있다. 그 밖에 요한복음에는 요한의 이름이 명기되어 있지 않으나, 다른 복음서의 기사, 혹은 전후 관계로 미루어 사도요한에 대해서라는 것은 1:35의 `세례 요한의 제자인 두 사람 중 하나', 18:15의 `다른 제자 하나', 13:22, 25, 19:26, 20:2, 21:20, 24의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라고되어 있는 것 등이다.X참고〉 전설로서 알려진 요한전설에 의하면, 요한은 십자가상에서 하신 예수님의 당부에 의해 마리아를 보호함에있어서 마리아를 예루살렘에 있던 자기 집에 모셔다가 마리아가 죽을 때까지 11년 동안 보호했다. 요한은 바울의 활동에 의해 복음이 소아시아 지방에서 세력을 얻게 되자, 에베소 교회의 초빙을 받아 요한은 에베소에 갔다. 이 전설은 이레니우스(Irenaeus), 에베소의 폴리크라테스(Polycrates),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등의 저서에 근거한 것이다. 이레니우스(제 2세기 말 프랑스 리용의 감독)의 `배이단'(排異端)에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세웠다. 요한은 그들과 같이 영주하여 트라야누스조(朝)에이르렀다'(제 3권 제 3장), '주의 제자 요한은 전에 주의 품에 의지했던 사람인데, 아시아의 에베소에 살면서 일부의 복음서를 썼다'(제 3권 제 1장)는 기사가 있다. 폴리갑은 사도들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또 그리스도를 직접 목격한 사람들과 교제했을 뿐만 아니라, 사도들에 의해 서머나 교회에서 아시아의 감독에 임명되었다. 요한이 트라야누스(Trajanus, 53- 117, 로마 황제, 재위 98- 117) 황제 때까지 살았다면 극히 고령에 이르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에베소에는 감독 요한이 있었기 때문에 이사도 요한을 장로 요한으로 보는 이도 있다. 여하튼 전설에 의하면, 그 후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 유형되었다에베소에 있는 요한의 무덤는 것이다(이 해설은 계 1:9 '나 요한은…하나님의 말씀과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에 근거한 것일 것이다). 요한이 밧모 섬에 간 것은 묵상을 위해(와이스의 설), 또는 박해를 피하기 위함이었다는 설도있다. 다른 전설에 의하면, 그는 고령에 달할 때까지 에베소에 있다가 거기서 고요히죽었다고도 하나, 이와 정반대의 전설도 있다. 그것에 따르면 '히엘라폴리스의 파피아스(Papias) 감독은 `주의 교훈' 제 2권에 요한은 유대인에게 피살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운운'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제 9세기에 생존한 게오르기우스 하다르톨로스(Georgius Harmartolos)의 저서에 있다고 한다. 여하튼 이와 같은 전설이 있었다는 것은,예를 들면 수리아의 교회력에 12월 17일은 요한과 야고보의 순교 기념일로 되어 있다는 것 등에 의해서도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다. 사도 요한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꾸며낸 이야기라고 생각되는 전설도 남아 있다. 그는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51-96, 로마 황제, 재위 81 96) 황제 때 박해를 받아 독배를 마셨으나 아무런 해를 받지않았다고 한다. 또 그는 펄펄 끓는 기름솥에 던져졌지만 기적적으로 죽음을 면했다고도 한다. 아폴로니우스는 '사도 요한은 에베소에서 죽은 자를 소생시켰다'고 말했다.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그는 타락한 신자로서 강도의 무리에 빠진 자를 구출하기위해 삼림에 들어가 마침내 그를 신앙으로 복귀시켰다'고 말했다. 그 밖에 세린사스의이단을 극복하기 위해 소아시아에서 제 4복음서를 썼다거나, 노경에 이르러서는 자고새를 벗삼아 노는 것을 일삼았다거나, 또 입버릇처럼 '활을 늘 휘어 두어서는 안된다'느니 하는 전설도 있다. 그는 종종 교회에 부축을 받고 출석했으나, 나이 많아 말도변변히 할 수 없게 되어 겨우 '젊은 아들아, 서로 사랑하라'은 말을 한데 불과했다고제롬은 말했다. 그가 죽자, 그것은 죽은 것이 아니라 잠잔다고 전해졌다는 이야기도남아 있다. 이것은 요한복음 21:23의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를 반영한것이리라.


예수님의 12제자 야고보(세베대의 아들)






* 최초의 순교자 야고보 (행12:1-3)




(1) 야고보




- 요한의 형제, 세베대의 아들, 가버나움에 사는 어부였다.





(2) 제자 가운데 핵심 인물




- 야고보를 예수께 데려간 사람은 동생 요한으로 추측된다.

-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와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가버나움에서 고기잡이 동업자로 예수를 믿은 신앙동지였다.

- 예수께서 세 제자 중의 하나로 선택한 데는 야고보에게 남다른 능력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베드로는 선천적으로 지도자의 기질을 가지고 있었고, 요한의 예수의 각별한 사랑을 받은 제자였다. 야고보는 예수 께서 최초의 순교자가 되리라는 것을 예견하신 것이다.

- 야고보는 요한과 함께 격렬한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예수께서 우뢰의 아들이라고 부르셨다. 그만큼 정열적인 성격의 소유자들이었다.





(3) 요한의 형 야고보




- 안드레가 베드로의 그늘에 가리워 있듯 야고보는 요한의 그늘에 가리워 있었다.

- 예수님과 그의 일행을 환영하지 않은 사마리아 사람의 마을에 '하늘에서 불을 내려 태워버릴까요'라고 제안할 때 요한과 함께 하였다.

- 주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 높은 지위에 앉기를 구할 때도 야고보는 요한과 함께 간청했다(막10:35-45).

- 야고보가 단독으로 나타난 사건은 그가 순교할 때 뿐이었다.





(4) 최초의 순교자 야고보




- 사도인 야고보의 순교기록은 그저 칼로 죽임을 당했다는 것 뿐이었다. 로마의 재판을 받은 것도 아니요, 유대 산헤드린 법정에서 사형언도를 받지도 않고 헤롯왕의 개인 권한에 의해 참수형에 처해졌다.

- 그러나 야고보의 순교는 우연한 것은 아니었다. 야고보는 동생과 함께 예수께 높은 지위를 요청했을 때 예수께서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을 침례를 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들은 서슴지 않고 '할 수 있나이다' 라고 대답을 하였다(막10:38-39).

- 예수님의 마시는 잔과 받을 침례는 순교의 쓴 잔과 순교의 피의 침례를 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이미 순교를 각오하고 맹세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야고보는 인간으로서 가장 의로운 일을 위하여 기꺼이 자기 목숨을 희생했다.



예수님의 12제자 안드레




*사람을 주께 인도한 안드레 (요1:40-42)




(1) 안드레




- 벳새다 사람, 시몬 베드로의 형제, 직업은 어부.





(2) 제일 처음 부름받은 안드레




- 안드레는 세례 요한을 따르던 제자.

-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는 침례 요한의 말을 듣고 요한과 함께 예수를 믿게 된 첫번째 사람이 되었다. '첫번째로 선택받은 사람'

- 안드레는 자기의 확신을 따르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 형제 베드로와는 다른 점이 너무나 많았다. 지조가 있고, 마음이 조용한 사람이었고 참을성이 많아 신중하고 침착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3) 사람을 인도하는 안드레




- 예수를 만난 안드레는 무엇보다 먼저 자기 형제가 메시야를 알기 원함.

- 안드레는 가정에서부터 선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형이 동생의 말을 믿고 따를만큼 침착하였다.

- 안드레는 두번째로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어린아이를 예수께 소개하였다. 안드레는 쓸모없다고 생각되는 것이라도 예수께는 쓸모있게 하실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안드레는 언제든지 예수께 의뢰하는 열심이 있었다.

- 안드레는 세번째로 헬라 사람들을 예수께로 데리고 왔다(요12:20-22).

예수께서 사람을 차별대우 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고, 예수의 복음이 만민에게 영접받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안드레는 헬라 사람 들을 예수께 소개하였다. 그래서 처음 전도자가 되었다.





(4) 겸손한 안드레




- 최초의 제자요 베드로를 예수께 인도하였으나 안드레는 다른 제자들의 뒷전에 밀려나 있었다.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제자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었고 안드레는 이런 일에서 소외되어 있었다.

- 안드레는 겸손한 사람이었다. 예수를 첫번째로 믿은 지위로 보아 예수의 왕국에서 높은 지위를 열망할 수도 있지만 그는 조용하게 뒷전에서 자기의 일을 했을 뿐이었다.

- 안드레는 본래 세례 요한의 제자로 '예수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말했던 겸손을 배운 것 같다.

- 안드레는 묵묵하게 자기의 책임을 수행하면서 사람들을 하나씩 예수를 믿는 승리자가 될 수 있도록 인도했다.

- 안드레와 같은 숨은 봉사자로서의 깊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면 베드로나 요한의 일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의 12제자 베드로




* 반석이라는 이름의 베드로 (마16:15-18)




(1) 시몬으로서의 베드로




- 베드로의 본 이름은 시몬이다.

- 직업은 어부로 아버지는 요한이었고 안드레라는 동생이 있었다.

- 시몬은 정규 공부를 하지 않아서 무식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행4:13).

- 복음서에는 충동적이며 성급하고 경솔하며 지나치게 열정적이고 반응이 빠른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 시몬은 예수께서 잡히실 때 말고의 귀를 잘라냈고,

- 조용하게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할 때 말을 꺼냈고,

- 깨어 있어야 할 때는 잠을 잤고, 가만히 있어야 할 때는 행동을 했다.

- 시몬은 신앙을 고백하고 칭찬을 받았으나 즉시 사탄의 냄새를 풍긴다고 책망을 듣기도 했다.

- 예수를 위해 죽기라도 하겠다고 큰소리 치다가도 예수를 알지도 못한다고 큰소 리로 대답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슴을 치고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를 했다.





(2) 베드로로서의 시몬




- 시몬은 예수님으로부터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기 위하여 사도로 부름을 받고 베드로(반석이라는 뜻)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 야고보, 요한과 더불어 더 많은 주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 베드로의 신앙고백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16:16).

- 베드로의 소망고백 :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겠습니까?'(요 6:68).

- 베드로의 사랑고백 :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요21:15).





(3) 베드로가 된 시몬




- 복음서에 나타난 베드로와 사도행전에 나타난 베드로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성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 예수님의 부활 승천 후에 그는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로 위치가 확고해졌다. 오순절에 성령 충만한 베드로가 설교하였을 때 3천명이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결실을 맺었다.

- 예수께서 그리스도임을 전파하다가 요한과 함께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고 풀려 나면서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도 말라는 함구령을 받았으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고 외쳤다.

-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벽을 뛰어넘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로마인인 고넬료의 집에서 말씀을 증거하여 성령이 강림하였다.

-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 시몬은 예수님을 만나 베드로가 되었고, 성령을 받음으로 새로운 반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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