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즐겨 부르는 147장 찬송가는 아이작 왓츠라는 믿음의 사람이 지은 시입니다. 그 찬송의 가사 같이, 주 달려 죽은 십자가를 우리가 생각할 때에는 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된 줄 알고 버릴 수 있습니다. 죽으신 구주 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는 줄 알 때에 우리에게 있는 교만한 마음을 다 버리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를 위해서 못 박히신 주님의 손과 발이 보이십니까?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그 영광의 면류관을 내려놓으시고 가시면류관을 쓰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저주와 고통을 받으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이 받은 은혜는 온 세상을 다 드려도 갚을 수 없습니다. 단지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고난을 생각하면서 우리들도 주를 위하여 몸으로 제물 삼아드리는 삶을 결단해야합니다.
오늘은 고난과 능욕을 다 받으시고 십자가 지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모진 우주적인 고난을 받으시면서 십자가 상에서 뱉으신 일곱마디의 말씀, 가상칠언의 말씀으로 주님의 받으신 고난의 큰 뜻을 새겨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그 잔혹한 십자가를 지셨는데, 이는 성경에 이미 예언했던 대로, 시편에서 말씀한 대로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그 십자가의 고난에 비교될 만한 조롱과 멸시를 다 받으셨습니다.
유대 총독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고서 죄를 정했습니다.
그리고는 로마 군병에게 예수님을 못을 박도록 넘겨 주었습니다.
(27:27)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갑니다.
가서 온 군대를 예수님 있는 곳으로 모읍니다.
우리 주님을 유대인으로 왕이라고 희롱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입으신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힙니다. 홍포를 입힌 것은 유대인의 왕이라고 조롱하는 뜻입니다. 또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을 엮어서 예수님의 머리에 씌웁니다.
왕이 드는 금홀 대신에 갈대를 주님 오른 손에 들게 합니다.
그 앞에서 그들이 마치 자기 황제에게 하듯이 무릎을 꿇고, 예수님을 놀립니다.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사람에게 얼굴에 침 뱉음을 받아 본 적이 있습니까? 그들은 우리 주님의 얼굴에, 우리 주님의 그 거룩하시고, 인자하신 얼굴에 그들이 침과 가래를 뱉았습니다. 그러고는 예수님께서 들고 계시던 갈대를 다시 빼앗아서 예수님의 머리를 칩니다.
희롱을 다 한 후에 입혔던 홍포를 벗기고, 도로 예수님의 입었던 옷을 입힙니다.
이제 그들은 그 부끄럽고 무거운 십자가를 연약한 주님의 어깨에 지게하고는 예수님을 끌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길에서 쓰러지시자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구레네 시몬이라는 사람에게 억지로 지게 했습니다. 골고다에 이르러서 진통을 멎게 하는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님께 드렸으나, 마시지 아니하셨습니다.
저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습니다.
양 손과 양 발에 못을 박습니다.
예수님의 옷을 제비를 뽑아 나눕니다.
그 때에 예수님 좌편과 우편에 두 강도가 못을 박혔습니다. 아무 흠이나 죄 없으신 주님께서 강도와 같은 대우를 우리 주님께서 받으신 것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비웃습니다.
"성전을 사흘만에 헐고 짓는 자여,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자기도 구원 못하면서 남을 구원한다고 하느냐?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 오라.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저가 남은 구원 하였으되 자신은 구원할 수 없도다" 놀립니다.
함께 못 박힌 강도조차 같이 놀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전 9시에 못 박혀서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오후 3시에 운명 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입니다.
이 모든 능욕과 고난과 희생이 다 죄로 인하여 영원한 죽음 가운데 있는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죄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고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을 때에 우리의 죄가 용서함 받고, 구원얻습니다.
오늘 이 시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 달리시고 마지막에 운명하실 때 까지 십자가 상에서 하신 일곱 마디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이를 "가상 칠언"이라 하는데 이 예수님의 가상칠언의 살펴보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역사가 무엇을 위함인지 그 고난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것입니다. 이 가상칠언의 말씀을 새기면서 우리들도 이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와 고난을 우리 몸에 채우는 한 주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1.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눅23:34).
"Father, forgive them." 이 말씀은 물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로마 군인들을 위해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 모두를 위해서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배반한 베드로를 위한 말씀이었고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인 사울을 위한 말씀이었고 한 평생 주님을 무시하고 거역하고 속이면서 살아가는 여러분들과 저를 위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 때문에 이 기도 때문에 지금 여러분들과 제가 죄 사함과 구원의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Father, forgive them." 그리고 이 말씀은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님이 하신 말씀을 하면서 살아가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여 아무 아무개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미워하는 아무 아무개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2.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Today, you will be with me in paradise." 이 말씀은 물론 예수님 곁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를 위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를 위해서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저주한 베드로를 위한 말씀이었고 예수님을 반항한 사울을 위한 말씀이었고 한 평생 거짓과 탐욕 가운데서 살아가는 여러분들과 저를 위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과 기도 때문에 세상을 떠나는 순간 여러분들과 제가 지옥 불에 떨어지는 대신 낙원 곧 천국에 이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Today, you will be with me in paradise." 그리고 이 말씀은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님이 하신 말씀을 하면서 살아가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여 아무 아무개도 낙원에 이르게 하옵소서. 내가 미워하는 아무 아무개도 낙원에 이르게 하옵소서."
3.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19:26-27).
"Woman, behold, your son." 이 말씀은 물론 십자가 아래서 슬피 우는 어머니 마리아를 위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를 위해서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서 이별의 슬픔과 죽음의 아픔 가운데서 슬피 우는 수 많은 사람들을 위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슬픔과 아픔을 당하는 외로운 자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가족과 성도들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기도 때문에 슬픔 가운데서 위로를 주고 받으며 외로움 가운데서도 효와 사랑을 나누며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Woman, behold, your son." 그리고 이 말씀은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님이 하신 말씀을 하면서 살아가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슬픔과 아픔을 당한 사람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하며 살아가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 아무개여 보소서 그대는 나의 형제요 자매입니다. 그대는 나의 부모요 나의 자녀입니다."
4.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마27:46).
이 말씀의 뜻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인데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게 된 비극을 절규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를 위한 절규였습니다. 우리 대신 부르짖은 절규였습니다. 내가 버림을 받아 비명을 질러야 하는 나의 비명을 대신 지르신 비명이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아야 하는데 주님이 나대신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주님이 버리심을 받음으로 우리가 찾음이 되었고 주님이 끊어짐을 당함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되었습니다. 그가 버림을 받았습니다. He was rejected.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이 기도때문에 이 부르짖음 때문에 우리는 찾음이 되었고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님이 하신 말씀을 하면서 살아가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대신하여 버림을 받는 비극을 감수하며 살아가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여 아무 아무개 때문에 나를 버리셨나이까."
5. "내가 목마르다"(요19:28).
"I thirst."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의 목마름을 토로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의 목마름을 토로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목말라서 소리지르는 나의 소리를 대신 지르신 것입니다. 내가 목말라야 하는데 주님이 나 대신 목마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 대신 물과 피를 쏟으시고 목마르시므로 내가 생수를 마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목마름을 대신 당하셨고 그 대신 우리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를 부어 주셨습니다. "내가 목마르다." "I thirst." 그리고 이 말씀은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님이 하신 말씀을 하면서 살아가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대신해서 목마른 삶을 살아가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여 내가 목 마릅니다. 여기 아프리카의 형제들과 함께 여기 아프카니스탄의 형제들과 함께 내가 목 마릅니다."
6. "다 이루었다"(요19:30).
"It is finished." 이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므로 자기의 사역을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를 위한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들이 이루어야 할 믿음과 순종과 헌신과 사랑의 모든 일들을 다 이루어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믿음도 없고 순종도 없고 헌신도 없고 사랑도 없습니다. 그것을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다 이루어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우리들의 모든 사역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구원도 이루시고 우리의 봉사도 이루시고 우리의 사랑도 이루시고 우리의 영광도 이루십니다.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어주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It is finished." 그리고 이 말씀은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님이 하신 말씀을 하면서 살아가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우리도 우리 자신의 목적과 뜻을 이루며 살지 말고 오직 주님의 목적과 뜻을 이루며 살아가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여 나는 부족하지만 아버지의 뜻을 이루며 살았습니다."
7.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Father, into your hands I commit my spirit." 이 말씀은 예수님이 자기의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들의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 드리는 말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스데반을 대신해서 드린 말씀이었고 야고보를 대신해서 드린 말씀이었고 베드로를 대신해서 드린 말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우리 모두를 대신해서 미리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떠날 때 우리의 영혼이 아버지 손에 들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우리도 세상을 떠날 때 주님이 하신 말씀을 하면서 떠나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 때문에 세상을 떠날 때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손양원 목사님도 박윤선 목사님도 세상을 떠날 때 이 말씀을 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Father, into your hands I commit my spirit."
한 주간 동안 일곱 마디 말씀들을 마음에 새롭게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시고 부어주신 주님의 놀라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새롭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죄 사함의 은혜와 구원의 은혜가 새롭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용서의 은혜와 희생의 은혜가 새롭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위로와 사랑의 은혜가 새롭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영혼이 아버지의 손에 안기는 낙원의 은혜가 새롭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십자가가 여러분들의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가상 칠언이 여러분들의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죄와 멸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인생의 질고를 다 담당하시고, 슬픔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그 분이 약하고 못나고 피할 지혜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천지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가지신 분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갈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주님의 고난은 우리를 인함입니다.
나를 인함입니다.
내 죄를 인함입니다.
내 죄의 형벌을 대신 받으심입니다.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은 유대 병정, 로마병정이 아닙니다.
나와 여러분의 죄악이 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한 것입니다. 우리의 죄악과 허물과 질고와 슬픔을 대신 지신 십자가 입니다.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할 때에
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된 줄 알고 버리네.
죽으신 구주 밖에는 자랑을 말게 하소서.
보혈의 공로 입어서 교만한 맘을 버리네.
못 박히신 손 발 보오니 큰 자비 나타내셨네
가시로 만든 면류관 우리를 위해 쓰셨네.
온 세상 만물 가져도 주 은혜 못 다 갚겠네
놀라운 사랑 받은 나 몸으로 제물 삼겠네
우리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십자가 상에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첫째로, 이렇게 원하고 원하셔서 십자가 지시고, 완전히 다 이루신 그리스도의 구속임을 믿어야합니다. 믿을 때에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용서함 받았음을 믿읍시다.
둘째로,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을 본받아 우리들도 원수라도 끝까지 사랑합시다.
셋째로, 주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강도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신 것 같이 우리들도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복음을 전합시다.
넷째로, 주님의 심정을 가지고 주님의 일을 합시다. 주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목마름을 느끼시듯 우리들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심한 갈증을 가집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전부를 다 기울여 순종하신 것 같이 우리들도 모든 것을 다해서 주님의 뜻을 이루어드림으로 모든 결과는 하나님께 맡깁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