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대표팀이 올림픽 예선 2경기(그리스, 말리전)를 치른 테살로니키는 그리스 제2의 도시다.
사도 바울이 ‘테살로니키인들에게 보낸 편지(신약성서 데살로니가 전·후서)’를 쓴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그리스정교회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이곳에는 초기 기독교 시대에 지어진 교회가 아직도 여러 개 남아 있다.
그중 몇 곳은 그 역사성과 그들이 보존해 온 성화의 가치가 높이 평가돼 세계문화유산의 반열에 올랐다. 아테네와는 버스와 열차, 항공기, 선박 등으로 수시로 연결된다.
테살로니키가 위치한 북부지역은 행정상 마케도니아주에 속한다. 마케도니아는 젊은 알렉산더 대왕이 지배했던 왕국. 테살로니키 인근에는 그때의 왕도(王都)였던 펠라(Pella)와 아이가이(Aigai·지금의 ‘베르기나’로 세계문화유산) 유적이 남아 있다.
이 마케도니아란 명칭이 한때 외교 문제가 됐던 적이 있다. 1992년 1월, 그리스 북쪽의 한 자치국이 ‘마케도니아공화국’이란 국명으로 유고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그때 그리스는 “마케도니아는 그리스의 지적 재산이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며 국명을 바꿀 것을 요구했고, 국가 승인도 거부했다. 물론 지금도 양국은 교류는 하고 있지만 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마케도니아 왕국이 그곳까지 영역으로 삼았기에 마케도니아 공화국의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왕국의 주류는 기마 민족의 하나인 트라키아인들로 그들은 지금의 마케도니아에서 불가리아를 거쳐 흑해 북쪽의 광대한 초원에 이르는 지역에 살았다. 알렉산더 대왕의 군대가 말을 잘 타 페르시아군을 쉽게 무찌를 수 있었던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리스인들이 자랑하는 헬레니즘은 항해술이 뛰어난 남부 그리스인과 말 다루는 데 천재적 재주를 가졌던 북부 트라키아인들이 힘을 합쳐 만들어 낸 사해동포주의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이 기수를 동쪽으로 돌려 인도 땅까지 달려가 헬레니즘 문화의 씨앗을 뿌렸다. 알렉산더 대왕이 동쪽으로 온 까닭은 뭘까. 아시아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아테네 올림픽을 계기로 다시 한번 이 문제를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