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이 존경을 받는 이유는 그의 뛰어난 전술과 전략보다는 그의 인간적인 면이다. 그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절반의 승리이다. 그는 억울하게 모략을 당하되 구차히 정쟁하지 않았고, 배반을 당하되 배반하지 않았으며, 신분이 올라 갈수록 말단 병정들과 주민들을 정성으로 돌아보았다. 그는 전쟁에 승리했을 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승리한 것이다. 순수하고 청렴한 기백과 겸손하고 소탈한 인격, 역사를 꿰뚫고 상황에 정확한 직관, 뛰어난 문장과 깊은 사색에서 나온 이상과 신념, 또한 장렬한 최후 등, 그는 전쟁보다 인간적인 면에서 승리한 사람이었다.
맥아더가 명장이라는 사실은 분명한 것 같다. 수많은 전쟁에서 큰 전과를 올렸기 때문이다. 장군이 전쟁의 측면에서 승리를 쟁취하는 것은 그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업적이다. 그러나 맥아더의 승리는 이순신에 비하면 비교가 안 된다. 막강한 군사력의 우위를 갖고 상대를 제압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다.
전쟁적 측면으로만 비교해도 이순신은 맥아더를 훨씬 뛰어넘는다. 그러나 더 큰 차이는 그의 인간적인 측면에서 나타난다. 맥아더가 이혼한 경력을 가졌다든지 휘하의 동료와 부하들에게 일치된 존경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일단 접어두자. 더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은 그를 대통령으로 옹립하려고 오랫동안 애썼던 사람들이 공화당 보수파였다는 사실이다. 이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의 성향이 결코 인종적으로 관대하거나 약자들을 옹호하는 신념을 가진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2차대전과 한국전쟁에서 올린 그 굉장한 전과와 인기에도 불구하고 결국 선거에서 승리를 얻지 못했다. 이는 그가 전쟁에서는 승리했지만 인간적인 면에서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가 남긴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져갈 뿐이다"라는 말은 유명하기만 할 뿐이지 그 속에 담긴 어떤 위대한 이념이나 사상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머리가 둔한 탓일까… 그냥 허무한 느낌만 들 뿐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누가 더 훌륭하다거나 잘났다는 것이 아니다. 맥아더가 아니라 이순신이라 할지라도 그가 높여지고 추앙받는 이유가 어떤 불순한 의도에 의한 상징화에 있다면 그것은 유쾌하지 않다는 것이다. 광화문을 지나가면서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볼 때마다 내가 그토록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순신 장군이라 할지라도 권위주의 시대에 그것을 세운 사람들의 의도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그 씁쓸한 마음은 이순신이라는 인물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통해서 자기 패거리의 권력을 유지하고 독재를 합리화하며 인권의 유린을 정당화 하는데 사용한 사람들에 대한 고통스런 정서인 것이다.
맥아더 동상의 상징성
한국전쟁의 공산화 위기에서 미국의 도움을 받아 기사회생한 우리에게 미국은 은인의 나라, 영원한 맹방, 형제국… 뭐 이런 수식들이 사용되는 것이 당연하기만 했다. 그러나 불평등한 주둔군 협정과 수많은 미군범죄 사건, 주종적인 내정 간섭들을 경험하고, 중동지역의 전쟁들과 그 전쟁의 결과를 관망하고 있는 이 시대의 한국 사람들에게는 미국에 대한 정서가 한결같을 수 없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맥아더 동상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한국은 미국에게 받은 은혜를 영원히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미국은 한국의 수호천사라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미국이 전 세계에서 비난 받고 모욕을 당해도 한국 사람들만은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강요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어떻게 참아보겠는데 이것이 친일로 얻은 기득권을 교활하게 친미로 전향해온 몇몇 사람들의 확실한 보호 상징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서는 분통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젊은 시절 빈민촌 목회로 크게 존경 받는 한 목사님께서 카운터펀치를 날리고 말았다. 이런 사람들을 "이 나라의 기본 체제를 뒤집겠다는 나쁜 세력"이라고 규정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 숫자가 수천 명에 이르는 것을 보면 분명히 북쪽의 사주내지 조종도 있음직한 일"이라고 상당히 위협적인 추측을 덧붙인 뒤 "우리 사회에 이런 류의 좌경화 세력이 지나치게 늘어나 이제는 '우리 세상이 왔다'는 식으로 활개를 치고 있다"고 못 박았다.
그런데 나는 그 목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그토록 비난 받는 그 좌경세력에 대한 동정과 희망이 솟아오른다. 정말 그 글에 나온 대로 철거하려는 측이 4천5백 명이고 이를 막는 측이 1천 명이라면, 그 1천 명이 4천5백 명을 막아냈다면 어느 쪽이 더 평화적인가? 그토록 위험한 좌파가 월등히 많았는데 그 동상은 철거되지 못했다. 어느 쪽이 더 많이 참았는가? 자기들의 세상이 왔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좌익의 수가 늘어났는데도 이렇게 자유롭게 공격할 수 있다면 그들은 얼마나 민주적인가! 그 글을 쓰는 목사님도 스스로 그렇게 믿지는 않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정말 아이러니한 사실은 그 목사님께서 젊은 시절 빈민들을 돌볼 때에 권위주의 정권으로부터 억울하게 친북세력으로 오해를 받고 고초를 많이 겪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자신을 공산당 빨갱이로 몰았던 언필칭 극우수구보수 세력과 차별화된 새로운 우익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새로운 우익 운동의 양상이 어찌된 일인지 과거의 양상과 다름이 없지 않는가! 이는 정말 전략적 실패라고 아니할 수 없다. 적을 이롭게 만들고 만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생각하면서 양쪽 진영에 훈수를 하나 두고 싶다. 자신들의 주장을 설득하려면 서로 완전하게 다른 주장에 대해서는 조용하게 의견만 말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흥분해 있을수록 차분하게 의견만 표명하는 것이다. 과격한 상대의 행동이나 주장이 있더라고 구경만 한다. 그러나 상대방과 자신이 함께 선이라고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상대방 보다 더 강력하게 도전한다. 예를 들어 부정부패의 문제, 부정직의 문제, 명백한 사실왜곡과 같은 문제들 말이다.
이방에게도 인정받았던 예수처럼
다시 이순신으로 돌아가 보자. 이순신은 우리 민족만의 영웅이 아니다. 일본 사람들도 이순신을 존경하고 무서워하기는 했지만 나쁜 사람으로 보지는 않았다. 맥아더는 자신의 나라에서조차 아주 뛰어난 영웅이라는 데에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그까짓 동상 하나 갖고 우리가 그렇게 흥분할 필요는 없다. 자기편 사람들에게만 위대한 사람은 절대로 위대한 사람이 아니다. 상대방에게도 옳다고 인정을 받아야 진짜 위대한 사람이요 옳은 사람이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예수님을 보자! 이방에도 공의를 베푸시는 분이 아닌가! 예수님은 기독교인들에게만 공의로운 분으로 인정받지 않는다.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지만,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않아도 존경은 한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이사야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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