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의 생활양식인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주인이 하인들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그때에 하인들이 여러 가지를 가져왔는데, 그 중에 한 하인이 ‘혀’를 가지고 왔다. 주인은 다시 한번 하인들에게 시켰다. 이번에는 가장 나쁜 것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때에 이 하인은 또 다시 혀를 가지고 왔다. 주인은 하도 이상해서 물었다. “너는 왜 가장 좋은 것도 가장 나쁜 것도 혀를 가지고 왔느냐?” 하인은 대답하기를 “혀가 좋은 것일 때는 그 이상 좋은 것이 없고 그 혀가 나쁠 때에는 그 이상 나쁜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주인은 기뻐하며 맞장구를 쳤다.
그렇다. 인간의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말은 불처럼 전파성이 있다.
조그마한 담배꽁초 하나가 온산을 불태우듯이 인간의 말 한마디가 온 세상을 뒤집어 놓을 수 있다. 성경에는 혀를 작은 키로 비유했다. 큰배가 작은 키에 의해 움직이듯이 사람의 큰 생각은 언어를 통해서 움직이고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혀를 잘 다스리는 자가 되어야겠다. 잠언에 “많이 말하는 것보다 적게 말하는 것이 좋다”고 했으니 좋은 지도자는 자기 말을 스스로 제어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다. 말에 신중할 것을 당부한 속담이다.
또 말은 인격의 표출이다. 선한 사람은 선한 말을 하고 악한 사람을 악한 말을 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주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하여 너희 속에 악한 것이 있기 때문에 악한 말을 한다고 하시지 않았는가.
한동안 한나라의 정치지도자의 언행으로 인해 온 나라가 혼란스러운 적이 있다. 지도자로서는 신중치 못하다는 것이다. 말은 정치지도자만이 아니라 교회의 지도자에게도 중요하다. 한 교회지도자의 말 한마디 잘못으로 그 말을 들은 당사자들이 심한 모멸감을 느낀 적이 있다. 그 사건은 신중치 못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커다란 파급효과를 갖게 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에베소서 4장 15절에는 “오직 사랑 안에서 참말을 하라”고 했고, 잠언 15장 1절에는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고 했다. 우리는 상대를 세워주는 말, 아껴주는 말, 사랑하는 말을 하는 지도자가 되어야겠다. 주께서 “긍휼히 여기는 자가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고 했으니 우리가 악한 말을 하면 악한 말을 들을 것이 뻔하다. 물론 책망의 말을 해야할 때는 용기 있게 할 수 있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어느 경우이든지 간에 지도자는 혀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