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동대문 전철역에서 4호선 열차를 바꾸어 타려고 긴 통로를 지나가는 중이었다. 천정을 모두 뜯고 배관 공사를 하는 중이라 머리 위가 어수선 해보여 사람들이 여느 때 보다 더 빨리 통로를 벗어나려고 부산하게 밀려오고 밀려가고 있었다. 통로 중간쯤 이르렀을 때 주변에 걸맞지 않게 살벌한(?) 정적을 잠재우는 듯 하는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면서 주시해 보니 한 노파가 통로 벽에 등을 기대고 두 손을 떨면서 하모니카를 불고 있다.

요즘 전철 1호선에서나 시내 지하도 입구에서 동정을 구하는 사람들이 의례히 틀어대는 카세트 찬송가나 복음성가는 아니지만, 오히려 순수하고 듣기에 신선해서 좋았다. 한참을 서서 하모니카 연주를 듣다가 지갑을 열어 지폐 한 장을 앞에 놓인 헌 모자에 넣고 “할머니, 하모니카를 잘 부시네요. 가곡을 좋아하세요? 교회는 다니세요?”라고 말을 건네자 적당한 키에 반백의 갈색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빗어 넘긴 칠순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가 주름투성이의 창백한 얼굴로 정색을 했다. “나요, 우리가곡을 좋아합니다. 교회 다니고, 예수도 믿어요.”라고 나름대로 교양과 품위가 있는 자세로 대답을 하는데, 그 모습이 유럽의 집시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말을 더 계속하지 못하고 할머니의 영업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그럼 할머니 건강하세요. 그리고 교회 더 잘 나가시고 믿음생활 잘 하세요”라는 말을 하고 발길을 천천히 돌렸다.
다시 하모니카 소리가 들린다.
‘♬내 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요…그 잔잔한- 고-향바다…,
언제 들어도 정다운 노래다. 점점 멀어져가는 하모니카 소리가 잡힐 듯 잡힐 듯이 귀전을 울리면서 잠시나마 내 마음을 부산 영도(影島)앞 바다가로 옮겨놓았다.

나는 중학교를 다니던 50년대 어린 소년시절을 바다가 훤히 보이는 부산 영도 산마루 동네에서 살았다. 갈매기 우는 소리와 뱃고동 소리를 정답게 들으면서 제이송도 해안 길(영선동 버스 종점아래 해안 방파제)을 거닐다, 음악시간에 배운 <가고파>와‘♪창공에 빛난 별 물위에 어리어 바람은 고요히 불어오누나. 내 배는 살같이 바다를 지난다.…를 부른다.

그리고 더 멋있게 불러보려고 하모니카로 나 혼자만의 연주회를 하기도 했다. 짭짤한 염분이 섞인 세찬 바람에 코를 실룩거리며 영도다리를 건너 학교에 다녀오다 영도다리 옆 부두 가로 간다. 풀빵을 사먹으면서 대평동 고기 배 선창가 공터로도 간다. 약장수들이 하모니카 아코디언 색소폰으로 악단을 만들어 만담을 곁들여 가면서 노래판을 벌린다. 해가 질 때쯤 짐을 싸고 내일 다시 만나자고 하면서 마지막 곡으로 선사하는 하모니카 소리,♩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쉴-곳은 작은 집 내-집뿐이리… 라는 <즐거운 나의 집>(Home, Sweet Home)을 다 듣고서야 집에 가던 생각이 난다.

서울의 도심 지하철 통로에서 하모니카를 부는 할머니의 고향도 어쩌면 부산이나 마산, 아니면 바다가 훤히 보이는 남쪽이겠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얼마나 가보고 싶은 남쪽 바다일까? 형편을 잘 알 수는 없으나 지금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구차한 생활 때문에 길거리에서 하모니카를 분다.
그러나 주일이 되면 거룩한 찬송을 하나님께 드릴 집시같은 할머니에게 예수님의 인도하심이 있기를 기원한다.

최건차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