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첫 째날 마 21장 1-11절 2004-03-31 14:06:32 read : 6297
20040404 고난주간 첫 째날 마 21장 1-11절
오늘은 고난 주간 첫째 날로서 '예루살렘 입성의 날'이라고 합니다.
이날 주님께서는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성으로 들어가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예루살람에 입성하시면서
나귀새끼를 타는 장면을 통해서 몇 가지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의 덕목을 발견합니다.
1. 첫째, 하나님은 순수한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되
항상 아마추어리즘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1장 2절을 보십시오.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을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그래서 제자들이 나귀와 나귀 새끼를 함께 끌고 왔습니다(7절).
마태복음만 보면 나귀와 나귀 새끼 어느 것을 예수님이 탔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똑같은 본문이 있는 마가복음 11장과 누가복음 19장을 보면
에수님은 어미 나귀를 타지 않고 새끼 나귀를 탔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어디를 향하는지 묵상해 보십시오.
사람이나 짐을 태우는데 어미 나귀는 경험이 많습니다.
교회로 말하면 프로입니다. 위원회도 많고, 사람도 많고, 돈도 많습니다.
그러나 새끼 나귀는 완전 아마추어입니다. 사람 태워본 적이 없습니다.
교회로 말하면 돈도 없고, 사람도 별로 없고, 순수하고 깨끗한 것 하나 뿐입니다.
그러면 인간적으로는 분명히 어미 나귀를 타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새끼 나귀를 탔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태우고 가는 길은
경험 많은 프로에게 주어지는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돈을 목적으로 일하는 프로에게 주어지는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해야 하지만
주님의 일을 할 때 항상 아마추어리즘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절대 교회이 일이 돈이 앞서게 하지 말아야 하고,
목회자가 먹고살기 위해서 사역을 하면 하나님의 그와 함께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돈 문제를 개입시키면 축복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순수한 아마추어를 돈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보다 더 축복하십니다.
2. 둘째, 하나님은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을 쓰십니다.
인간적으로 보기에 별로 가진 것도 없는 사람이
하나님의 쓰임을 받겠다고 하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지 않겠습니까?
21장 3절은 그런 상황에 적절한 말씀입니다.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누군가가 부정적인 말을 할 수 있습니다.
"큰 교회 틈에서 작은 교회들이 배겨내겠어!"
"지난 1년 동안 새벽기도회를 보라. 아무리 발버둥쳐도 안돼!"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고, 그런 풍문이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뭐라고 말하라고 하십니까?
"주가 쓰시겠다!"고 하라 하십니다.
주가 쓰시겠다고 하면 됩니다.
연약하고 경험 없는 나귀 새끼도 주가 쓰시겠다고 하니 쓰임 받았습니다.
아무리 부족한 모습이라도 하나님이 쓰시겠다고 하면 쓰임 받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쓰실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갈대 시몬이 반석 베드로가 되는 원리는 아직도 유효합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됩니다.
꾸준히 기도하며 준비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기회를 주십니다.
3. 셋째,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쓰십니다.
본문 5절을 보십시오.
"그는 겸손하여...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왜 주님이 겸손한 사람을 쓰십니까? 주님이 겸손하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겸손한 자의 등에 타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주님의 겸손함은 말씀을 이루려 하는 삶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4절)
마찬가지로 우리의 겸손함은 말씀에 순종하는 삶에서 가장 잘 나타납니다.
순종하는 삶에서 하나님은 놀라운 축복을 예비하십니다.
그러면 결국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주목받은 다음에 착각에 빠지지 않는 것도 겸손함입니다.
큰 교회가 되면 목사들은 '자기가 잘해서'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어린 나귀가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서 환호하는 군중들을 보고
자기가 대단해서 그런 것으로 어깨가 올라가면 이처럼 잘못된 착각은 없습니다.
그가 비뚤어져 예수님을 내리고 자기의 영화를 내세우는 순간
그 순간 그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외면 당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등에서 내리면 그 어린 나귀를 어느 누가 거들떠보겠습니까?
항상 겸손하게 등을 예비하는 자가 되어야 축복된 사람이 됩니다.
4. 넷째, 하나님은 헌신된 사람을 쓰십니다.
나귀 새끼가 준비되니까 사람들이 자기 겉옷을 그 위에 얹고
길에 펴고 주님의 길에 동참했습니다(7-8절).
등을 예비한 자가 있으면 겉옷을 예비하는 자도 있어야 합니다.
목사가 등을 예비한 나귀 새끼라면
평신도들은 겉옷 정도는 준비해 목사 위에 얹어야 합니다.
조그마한 헌신이 모여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5. 다섯째,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쓰십니다.
그때 사람들이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9절)
무엇을 찬양했습니까?
"자기의 본 바 모든 능한 일을 인하여..."(누가복음 19장 37절)
그러니까 예루살렘 온 성에 소문이 났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 사람들이 묻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뇨?"(10절)
우리도 이렇게 헌신된 모습으로 나가면 하나님은 소문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제단이 예수님 잘 태우는 제단으로 소문이 나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진짜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알고 싶다고 하는
거룩한 소망이 생겨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뇨?"하고 물을 때
예수님에 대해서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론적으로 준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을 체험한 삶의 간증이 항상 넘치도록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전하지 않으면 돌들이 소리지를 것이라는 듯이
주님에 대한 간증이 터져 나와야 합니다.
< 결론 >
여러분! 나귀 새끼도 쓰임을 받았습니다.
어린 나귀가 장신인 주님을 태우면서 많이 비틀거렸을 것입니다.
그래도 사용 받았습니다.
우리가 연약해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주님의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부족해도 하나님이 쓰시겠다고 하면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합한 사람이 되어 쓰임 받고 축복 받는 일생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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