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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없는 신앙은 맹목적이다
2004-02-27 12:47:40   read : 3723



신앙성장에 지름길은 없다


우리는 신앙 성장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이에 답하기 위해 우리에게 또 다른 물음이 필요하다. 앞의 질문은 어떻게 다음의 질문과 다른가? 우리는 토플 성적을 50점 올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체중을 5㎏ 줄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이런 종류의 성장과 신앙의 성장이 같은 맥락에 놓일 수 있을까?

가령 성경 10독이라는 목표를 세운 후 각고의 노력으로 이를 이뤄낸다면 신앙 성장이 보장되는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신앙 성장이 여타의 다른 성장들과 뚜렷이 차이 나는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성장의 목표를 세우는 주체가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성경 10독을 하는 것은 우리가 세우고 달성할 수 있는 목표이지만, 성경적인 신앙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향해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목표이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다”(롬 8:29)는 말씀처럼, 우리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뤄지는 것이 우리를 향해 세우신 하나님의 목표이다. 우리의 신앙 성장은 얼마나 하나님의 목표에 다가갔느냐 하는 것으로 판가름난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그분의 말씀으로 빚어진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신앙의 외적 목표를 달성하는 것과 꼭 일치하진 않는다. 성경 10독으로 교회에서 큰 상을 받았다고 해도 거짓말하고 도둑질하는 일상의 버릇을 고치지 못한다면, 이는 신앙이 조금도 자란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나의 목표를 이루는 것을 신앙 성장이라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바른 성장이 이뤄지기 위해선 말씀이 필수적이다. 말씀 없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성장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말씀 없는 신앙은 맹목적 신앙(blind faith)이 될 수 있다. 종교개혁자 칼빈이 이런 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만일 믿음이 말씀을 떠나면 그것은 넘어지고 만다. 그러므로 말씀을 빼고 나면 믿음이 남지 못한다”(「기독교강요」 Institutes, Ⅲ.ii.6). 말씀이 빚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 말씀으로 거듭나고 재구성된 신앙인이 되는 것이 신앙 성장의 목표다.

삶에서 붙들 말씀을 가져라
그러면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비참한 형편이 무엇인지 분명해지지 않은가? 다름 아니라 말씀에 따라 자라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으로 머무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라지 못하면서도 외적 지위가 자라간다면, 이는 더욱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스라엘의 전권(全權)을 가진 위치에 있으면서도 말씀이 막혀 버린 엘리 제사장의 형편이 그것을 잘 말해 준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정말 힘든 상황은 주변에서 어려움과 난관이 몰려오고 남이 나를 몰라주며 외로움과 무력감이 짓누르는 순간을 만나는 것 그 자체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붙들면 그런 것들은 아무 문제도 안된다. 진정 비참한 것은 붙들 말씀이 없는 것을 말한다. 성도들은 매일의 삶에서 낙담, 무기력, 좌절, 절망적인 생각, 유혹, 세상과 사람이 정도 이상으로 커 보이는 상황 등 다양한 난관들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 때마다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관점 속으로 돌아가면 모든 것들을 해결할 수 있다. 스스로 보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시는 나, 세상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아니라 세상의 주인이신 그분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분명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다.
말씀의 유익을 위해 우리는 매일의 양식같이 말씀을 취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공급받지 아니하고선 우리는 세상과의 싸움에 임할 수 없다. 그대로 세상에 먹히기 십상이다.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이 허기진 몸으로 일하러 나갈 수 없는 것처럼, 성도가 말씀의 공급 없이 일하러 나가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런 순간마다 우리의 귀에 영적 알람이 울려져야 한다. 아침이든 저녁이든, 집에서든 일터에서든 수시로 말씀의 공급을 위한 통로가 열려 있게 해야 한다.

언젠가 프랑크라는 네덜란드 친구와 동학사 쪽으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숙소를 정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같이 배낭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저 친구는 뭘 꺼내려나, 뭐 먹을 걸 가져 왔나’라고 했더니 두 사람은 똑같이 성경을 끄집어내는 것이었다. 행동이 어쩌면 그렇게 일치했던지 서로 바라보며 크게 웃음을 지었던 적이 있다. 여행의 배낭 속에도 성경을 가장 먼저 챙겨 넣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겠다는 마음의 결단을 담고 있다.

성경을 읽는 자세가 중요하다
말씀을 통한 하나님과의 사귐은 성경을 매개로 한다. 우리는 성경을 읽음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잘 읽는 사람이 될 필요가 있다. 우선 읽는 자세가 중요하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교회들에게 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기 위해 요한이 죽은 사람처럼 주님의 발 앞에 엎드린 것을 알 수 있다(계 1:17). 주님의 말씀을 듣는 우리의 자세를 말해 준다. 단순히 활자로 된 책을 읽는 자세가 아니라, 살아 계신 주님의 위엄 앞에 꿇어 엎드린 자세로 말씀을 들어야 한다.
또한 성경을 잘 읽기 위해선 해석의 훈련이 필요하다. 말씀은 역사와 문화를 초월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 속에서 주어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랜 역사의 흔적들을 조심스럽게 들춰보면서 성경을 읽게 된다. 성경을 잘 배우면서 읽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과정을 무시한 과도한 영해나 직해 등은 때로 위험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스프라울(R. C. Sproul)이 지적한 ‘행운의 손가락’(lucky dipping) 방식의 오류도 이런 데서 기인한다. 성경을 놓고 아무 곳이나 펼쳐 손가락으로 찍은 후 그것을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 말이다. 졸업을 앞두고 결혼을 걱정하던 한 여대생이 남편감을 위해 기도하던 중에 ‘행운의 손가락’을 사용해 스가랴서 9장 9절 말씀을 짚어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이 말씀을 놓고 나귀 탄 남편감을 기대하는 여대생이 있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이겠는가?

이런 방식의 성경 읽기는 결코 깊이 있는 신앙 성장을 이루지 못한다. 과거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망으로 성경 읽기를 사모해 까막눈이었던 할머니·할아버지들이 한글을 깨우쳤던 일을 기억한다면, 오늘 우리는 말씀의 깊이에 나아가기 위해 해석의 훈련을 기꺼이 즐거워해야 한다.
이것에 대한 또 다른 유익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할 줄 아는 차원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진다는 점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내가 좋아하는 말씀만 선택적으로 취하려고 하는 영적 편식에 빠져 있다. 그래서 항상 신앙이 개인주의 차원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다. 말씀에 따라 신앙이 성장하는 것은 말씀이 펼쳐 주는 하나님 나라의 전체 시각을 나의 것으로 삼는다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자기 신앙만 겨우 유지하는 초보적인 차원을 넘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다른 사람들을 돕고 양육하는 지도자의 차원으로 성장할 수 있다. 말씀 없이 신앙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엇으로 다른 사람들을 먹일 것인가?

우리 신앙의 성장은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의 성장을 말한다. 그럴진대 우리는 먼저 말씀으로 자라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비참함과 위험성을 자각해야 한다. 그리고 주린 영혼이 돼 말씀을 갈망하며 그 속사람이 말씀으로 철저히 바뀌고 말씀 위에서 든든히 자라 가는 신앙인이 돼야 한다. 지금 당장 우리는 말씀 없이 아무 일도 하지 않기로 결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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